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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자산

아마쿠사의 사키쓰 취락아마쿠사의 사키쓰 취락

(Ⅱ)잠복 기리시탄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


Yuko 생활 속 주변 물건을 신앙의 도구로써 대용하여 신앙을 실천한 취락

‘아마쿠사의 사키쓰 취락’은 잠복 기리시탄이 무엇을 숭상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했는지를 나타내는 4개 취락 중의 하나다. 금교기 사키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은 다이코쿠텐이나 에비스신을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인 데우스, 전복 껍데기 안쪽 무늬를 성모 마리아로 각각 여기는 등 어촌 특유의 생활이나 생업에 뿌리내린 친숙한 물건을 기리시탄의 신앙 도구로 대용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했다. 금교령 폐지 후는 가톨릭으로 복귀하여 금교기에 기도를 드린 신사 근처에 성당을 건설함으로써 그들의 ‘잠복’은 끝을 맞이했다.

‘아마쿠사의 사키쓰 취락’은 아마쿠사 시모시마 섬 서부에 위치한 어업을 생업으로 한 취락이며, 그리스도교 금교기 잠복 기리시탄이 기도할 때에 사용한 신앙 도구가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미즈카타 저택터, 은밀하게 오라쇼[라틴어(Oratio)에서 유래된 기도문]를 외웠던 사키쓰 스와 신사 경내, 에후미(성화 밟기)가 시행된 요시다 쇼야[庄屋, 마을의 정사(政事)를 맡아보던 사람] 저택터, 금교령 폐지 후에 가톨릭으로 복귀하고 사키쓰 스와 신사 근처에 세워진 초대 사키쓰 성당터로 구성된다.
사키쓰 취락은 전국시대에는 이미 취락으로 성립되어 있었고, 1569년 예수회의 알메이다 수도사에 의해 선교가 시작되면서 사키쓰 취락에도 그리스도교가 널리 보급되고 많은 신앙 도구가 전래되었다.
금교기가 되면서 사키쓰 취락에서는 매해 요시다 쇼야(庄屋) 저택에서 잠복 기리시탄을 찾아내기 위한 ‘에후미(성화 밟기)’가 시행되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상을 강제로 밟게 하고 ‘슈몬아라타메초(불교로 강제 개종하게 하고 그 동향을 기록한 책)’에 기록하여, 종파 및 소속된 사원이 관리하게 됐다. 사키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은 재래 신앙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표면상으로는 사키쓰 스와 신사의 우지코[신도(神道)의 신을 모시는 자]나 절에 시주하는 단가(壇家)가 되었다. 사키쓰 스와 신사는 1647년 창건이래, 풍어,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취락의 수호신으로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다.
취락 내에는 금교기 세례를 담당하는 등 신앙을 지도한 ‘미즈카타’의 저택터가 있다. 사키쓰 취락에서는 금교기에도 16세기부터 계속 내려온 소규모 공동체인 ‘소조(小組)’가 은밀하게 유지되고 ‘미즈카타’라고 불리는 지도자가 세례를 주고 장송의례를 비롯해 교회력에 따라 의례, 행사 등을 주관했다.
사키쓰 취락에서는 생업인 어업과 신앙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잠복 기리시탄은 풍어의 신인 다이코쿠텐이나 에비스신을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인 데우스로서 숭배하고, 전복 껍데기 안쪽 무늬를 성모 마리아로 여겨 숭상함으로써 신앙을 실천했다. 또 흰나비조개를 가공한 메달도 제작했다. ‘미즈카타’ 자손의 주거에는 현재도 메달 외, 바다에 관련된 신앙 도구가 보관되어 있다.
1805년 잠복 기리시탄의 신앙이 발각된 ‘아마쿠사 쿠즈레(박해)’때에는 마을사람들의 7할이 잠복 기리시탄으로 검거되고, 대관소는 잠복 기리시탄이 소유한 신앙 도구를 사키쓰 스와 신사에 내어놓아라 지시해서 몰수했지만,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지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라고 하여 처벌 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선교사가 아마쿠사에 찾아온 후 사키쓰 취락의 잠복 기리시탄들이 새롭게 세례를 받고, 16세기에 전해진 그리스도교인 가톨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888년 과거 미즈카타를 맡았던 잠복 기리시탄의 토지이며, 금교기 그들이 은밀하게 오라쇼를 외운 사키쓰 스와 신사의 근처 땅에 최초의 사키쓰 성당이 세워졌다. 그것은 사키쓰 취락에서의 ‘잠복’이 끝을 맞이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 목조 성당은 그 후 노후화에 의해 이전, 신축되었다. 철거지에는 수도원이 세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사키쓰 성당은, 1934년 에후미(성화 밟기)가 시행된 요시다 쇼야(庄屋) 저택터에 세워졌다. 그것은 에후미(성화 밟기)가 시행된 장소에 가톨릭 복귀를 상징하는 성당을 세우고 싶다는 할브 신부의 강한 바람때문이었다. 성당 내부는 당초부터 다다미가 깔려있었고, 제단은 과거 에후미(성화 밟기)가 시행되었던 장소를 선택해서 설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01_아마쿠사의 사키쓰 취락
02_崎津諏訪神社_日暮雄一撮影
02_사키쓰 스와 신사_히구라시 유이치 촬영
02_崎津諏訪神社_日暮雄一撮影
03_崎津諏訪神社の大祭_池田勉撮影
03_사키쓰 스와 신사의 대제_이케다 쓰토무 촬영
03_崎津諏訪神社の大祭_池田勉撮影
04_信心具(アワビ貝、個人所蔵)_池田勉撮影
04_신앙의 도구(전복 껍데기, 개인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
04_信心具(アワビ貝、個人所蔵)_池田勉撮影
05_信心具(城蝶貝メダイ、個人所蔵)_池田勉撮影
05_신앙의 도구(흰나비조개를 가공한 메달, 개인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
05_信心具(城蝶貝メダイ、個人所蔵)_池田勉撮影
06_初代崎津教会堂後(旧修道院)_池田さん撮影
06_초대 사키쓰 성당터(구 수도원)_이케다 쓰토무 촬영
06_初代崎津教会堂後(旧修道院)_池田さん撮影
07_崎津庄屋役宅跡(現在の崎津教会)_日暮雄一撮影
07_사키쓰 쇼야(庄屋, 마을의 정사(政事)를 맡아보던 사람)저택터(현재의 사키쓰 성당)_히구라시 유이치 촬영
07_崎津庄屋役宅跡(現在の崎津教会)_日暮雄一撮影
08_畳敷きの崎津教会堂内部_日暮雄一撮影
08_다다미가 깔린 사키쓰 성당 내부_히구라시 유이치 촬영
08_畳敷きの崎津教会堂内部_日暮雄一撮影

기본정보

Map
문화재 명칭 소재지문화재 종목문화재 지정연도
아마쿠사시 사키쓰·이마토미의 문화적 경관구마모토현 아마쿠사시국가 선정 중요문화적 경관2011년, 2012년(추가선정)

오시는 길

사키츠 성당(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기리시탄 관련 유산 인포메이션센터)

※새 창이 열립니다. (‘교통편 참고도’를 참고해 주세요)

UNE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