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시탄이 ‘잠복’하여 독자적인 신앙 유지 방법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의 주 전쟁터.
하라 성터는 기리시탄이 무엇을 계기로 ‘잠복’하게 된 것인지를 나타내는 구성 자산이다.
전국적으로 금교 정책이 진행되는 중, 하라 성을 주전장으로 일어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은 에도 막부에 큰 충격을 주어 가톨릭 선교사의 잠입 가능성이 있는 포르투갈 선박의 내항 금지와 2세기를 넘는 쇄국 체제의 확립, 그에 따라 국내 선교사가 추방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기리시탄은 ‘잠복’하여 자신들 스스로 은밀하게 신앙을 실천하고, 이주처를 선택하는 등의 노력을 하게 되었다.
하라 성터는 나가사키 지방의 남동부, 시마바라 반도 남부에 있는 기리시탄 다이묘(영주) 아리마 일족이 살았던 성터다. 바다로 돌출된 구릉의 지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성이며, 북쪽, 동쪽, 남쪽 세 방면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저습지가 면해있는 요새의 땅이었다. 1637년에 일어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의 주전장으로, 현재까지 이루어진 고고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금교 초기의 기리시탄이 이 난에 조직적으로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하라 성은 1598년부터 1604년에 걸쳐 기리시탄 다이묘(영주) 아리마 하루노부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아리마 일족 다음으로 영주가 된 마쓰쿠라 일족이 새롭게 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1618년부터 하라 성은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에도 막부가 금교 정책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1637년 마쓰쿠라 일족의 엄격한 통치와 기근을 계기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이 일어났다. 이 난에는 시마바라 반도 남부와 아마쿠사 지방의 농민으로 구성된 약 2만 수천 명의 기리시탄이 참가했다고 전해지며, 마스다 시로를 총대장으로 하라 성터에서 농성을 벌였다. 막부군은 12만 명이 넘는 병력으로 난을 일으킨 세력을 공격했지만, 심한 반격에 의해 8,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4개월에 걸친 공방 끝에 난을 일으킨 세력은 남녀노소 할 것없이 거의 전원이 죽음을 당했다.
이 난에서는 과거 이 땅을 다스렸던 아리마 하루노부나 고니시 유키나가 등 기리시탄 다이묘(영주)의 구가신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들은 기리시탄 공동체 단위인 ‘조(組)’의 지도자였다고 전해지며, 하라 성터에서 농성했을 때 성내에 예배당을 세우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 막부 측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실시해 온 하라 성터의 발굴 조사에서는 전몰한 기리시탄의 뼈와 신앙 도구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신앙 도구 중에는 그리스도교 전래기에 선교사로부터 하사되어 대대로 계승되어 온 메달을 비롯해, 성내에서 총알을 원료로 급히 만든 십자가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성내에서 농성을 벌인 기리시탄의 신앙 형태가 고고학적으로 밝혀졌다.
또한 혼마루 서측에서는 규칙적으로 만들어진 복수의 반지하식의 주거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구는 농성을 벌인 기리시탄이 금교 후에도 신앙을 유지하고 가족, 취락 단위로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기리시탄 관련 유구나 유물은 파괴된 돌담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하라 성이 다시 난에 이용당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에도 막부가 철저하게 파괴한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난을 일으킨 세력이 하라 성터에 가져와, 진중기(陣中旗)로 이용한 신심회(신자들의 협동조직)의 깃발과 성내에서 사용했던 라틴어를 일본어 발음으로 모사한 기도문이 현존하고 있으며, 그것들은 난의 진압후에 막부군의 무사가 전리품으로 가지고 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시마바라•아마쿠사의 난’의 사건은 그 후의 금교기를 통해서 나가사키 지방의 소토메 지역, 우라카미 지구 등 각지의 잠복 기리시탄 취락에서 그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전승되었다.
01_하라 성터
02_하라 성터 혼마루
03_하라 성터 니노마루
04_발굴조사로 확인된 인골(발굴 조사시의 사진)
05_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신앙 도구(메달, 아리마 기리시탄 유산기념관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
06_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신앙 도구(십자가, 아리마 기리시탄 유산기념관 소장)_이케다 쓰토무 촬영